트라우마는 단지 심리적 충격에 머물지 않습니다. 외상 경험은 종종 신체 통증으로 전이되며, 그 통증은 실제 병리 없이도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신체 통증으로 나타나는 생리학적 이유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적 치료 접근법에 대해 설명해드리겠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몸을 아프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병원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증상을 흔히 ‘기능성 통증’ 혹은 ‘심인성 통증’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종종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란 단순히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적인 감정 억압, 학대, 상실, 외면 등도 누적되며 깊은 정서적 충격을 남기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요통, 두통, 위장 장애, 근육통, 심장 두근거림 등은 자주 보고되는 대표적인 신체화 증상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뇌와 신체 사이의 생리적 반응이 잘못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뇌는 트라우마를 감지할 때마다 자율신경계를 자극하여 경계 상태를 유지하게 하고, 이로 인해 몸의 특정 부위가 긴장하거나, 염증 반응이 활성화되어 통증으로 전이됩니다. 결국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며, 그 신호는 언어가 아닌 통증이라는 방식으로 우리 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통증으로 전이되는 생리학적 경로
트라우마가 신체 통증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주로 자율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의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됩니다.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뇌의 편도체가 과활성화되며, 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을 자극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이 호르몬들은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 근육 긴장, 혈당 상승 등의 반응을 유도하며, 이러한 상태가 만성화되면 근육과 신경계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어 통증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트라우마는 척수와 말초신경계의 통증 인식 역치를 낮추며,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 반응을 유발하게 만듭니다. 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라 불리며, 만성 통증 환자에서 흔히 발견되는 신경학적 변화입니다. 더불어, 면역계의 만성 염증 반응도 통증을 유발합니다. 지속적인 트라우마는 뇌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증가시켜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고, 이는 관절통이나 근육통의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외상이 있는 경우, 성인이 된 후에도 반복적인 신체화 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초기 뇌 발달에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쳐 통증 처리 회로 자체가 예민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단순한 심리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신체 시스템 전반을 변화시켜 실제 통증으로 이어지는 다층적인 경로를 지니고 있습니다.
몸의 통증, 마음의 신호를 읽는 법
트라우마로 인한 신체 통증은 단순히 약물이나 물리치료만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통해 표현된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통증에 대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단순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아니라, 과거의 정서적 상처가 현재 몸의 언어로 표현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두 번째는 감정의 해소입니다.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심리상담, 트라우마 치료, EMDR(안구운동 탈감작 재처리) 등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심리치료는 통증 자체를 줄이기보다, 통증에 대한 뇌의 인식과 반응을 변화시킴으로써 효과를 봅니다. 세 번째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돌보는 통합적 치료입니다. 요가, 명상, 심호흡, 바디스캔 등은 몸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신경계를 안정화하여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네 번째는 자기 돌봄입니다. 따뜻한 목욕, 충분한 수면, 영양가 있는 식사,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등은 모두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증이 있다는 것은 약함이나 과민함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경청하고 돌보는 태도가 통증을 치유하는 첫 걸음입니다. 결국 트라우마로 인한 통증은 단순히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고 해석해야 할 귀중한 신호입니다.